제목 송혜수展 :: Various
내용

『 송혜수展 』

탄생 100주년 기념展 :: Various







▲ 송혜수






전시작가 송혜수(Song Hyesoo 宋惠秀)
전시일정 2013. 05. 03 ~ 2013. 05. 24
관람시간 Open 10:00 ~ Close 18:00
∽ ∥ ∽
미광화랑(MIKWANG GALLERY)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701-3
T. 051-758-2247
www.mkart.co.kr







‘소와 여인’과 ‘풍경화’를 중심으로 바라본 송혜수의 예술세계

김동화(金東華)

이번 미광화랑(美廣畵廊)의 송혜수 전은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사후 8년여 만에 열리는, 본격적인 의미의 첫 회고전이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그의 유작전이 부산에서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 도리어 의아하게 여겨질 만큼, 부산 화단에서 작가가 차지하는 사적(史的)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부산 미술의 계보를 열거할 때, 그 정점에 일본 데이코쿠(帝國) 미술학교 출신인 송혜수와 김종식(金鍾植)이 자리 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술교육 측면으로서의 성취는 부산 화단의 주요 작가들 상당수 - 김원호(金元鎬), 김응기(金應基), 김정명(金正明), 안창홍(安昌鴻), 이강윤(李康潤), 이동순(李東珣), 전준자(全俊子), 허 황(許 榥) 등 - 가 ‘송혜수 미술연구소’ 출신의 직계 화실제자라는 점이며, 화업 측면으로서의 성취는 자유로운 예술정신에 입각한 재야적, 반골적 기풍으로 일평생 전업을 견지하면서 민족적 원형질과 원초적 생명력을 추구한 근대기의 전형적 작가상을 확립해 내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의 종합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인생 전체의 거대한 윤곽을 요약적으로 스케치해 볼 수 있다. 또 작가는 별세하기 전, 현금과 부동산 등의 사재를 출연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송혜수 미술상’을 제정함으로서, 지역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 송혜수, 소



▲ 송혜수, 군마


이번 회고전에서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을 중심으로 작가의 전체 작업을 조망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소와 여인’ 연작으로, 이 계열의 작업들은 작가가 일평생을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그야말로 필생의 테마였다. 일제강점기 근대미술가들이 추구했던 정조의 핵심은 민족 정체성의 표현으로서의 향토의식 혹은 향토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와 연관되어 민족적 상징의 강력한 모티브로 차용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소재가 바로 ‘소’였다.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발발 전후로 일제의 단말마적 광증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는 성전미술(聖戰美術)의 종용과 화필보국(畵筆報國)의 기치 하에 예술의 순수성은 훼절되었고, 말과 글은 물론 이름까지 빼앗겼으며, 젊은 장정들과 꽃다운 처녀들은 징용과 정신대로, 군수물자와 곡물들은 전장으로 실려 가던 절망의 시절이었다. 전시체제의 식민수탈이 극한까지 치닫던 민족의 암흑기에 ‘소’를 그린 대표적 화가들로는 이중섭(李仲燮), 진 환(陳 ?), 최재덕(崔載德) 등의 조선신미술가협회(朝鮮新美術家協會) 회원들과 데이코쿠 미술학교 출신인 고 석(高 錫), 송혜수 등을 거명해 볼 수 있겠다. 이들이 그린 ‘소’는 단순한 향토적 풍물이라거나 회화적 소재로서의 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을 향한 사랑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당시 문학에 있어서의 이육사(李陸史)나 윤동주(尹東柱)가 성취한 고결한 시정신(詩精神)에 값하는 것이었다. 평론가인 다나카 신이쿠(田中信行)가 ‘생활미술(生活美術)’ 1943년 5월호에 ‘미술창작 제7회전’ 출품작들에 대해 언급한 글 속에는 “송혜수의 작품 ‘소’와 이중섭의 몇몇 작품들(‘소와 소년’, ‘망월’, ‘여인’)의 경우, 일종의 민족성을 응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특이성이 근강(根强)하게 발휘되고 있다”는 논평이 실려 있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민족주의적 속성과 특질들이 일본인 전문가들에게까지 얼마나 분명하게 투영되어져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자료이다.

물론, 그림에서 단순히 소재만으로 작업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화가에게 있어 여타의 소재들과 ‘소와 여인’이라는 소재를 비교할 때,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둘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화가가 추구한 예술정신의 정수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묵묵히 일하며 인내하는 ‘소’를 민족의 상징이자 민족혼이 체현된 일종의 성수(聖獸)로 생각했고, 소의 황토 빛과 백의의 흰 빛을 지극히 사랑했다. 또한 ‘여인’은 풍요로움과 다산 그리고 자애로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모성 자체이기도 하고, 남성 이미지인 소 - 마치 피카소가 즐겨 그린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처럼 - 에 대응하는 에로틱한 뮤즈적 대상이기도 하다. 화가의 작품에는 설화적 신비와 성애적 감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으며, 토속적 소재 이면으로 관능성을 포함하는 세련된 감각이 반짝이고 있다. 연필화 ‘소와 여인(도1)’에서 약간 흐린 윤곽선으로 그려진 여인은 삼단 같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왼손으로는 소의 어깨를 안고, 구슬을 든 오른손으로는 소의 목덜미를 만지려 하고 있다. 소는 편안한 표정으로 여인에게 안겨 있는데, 피카소의 작품 속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와는 달리 화가의 소는 온순하고 착해 보인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자면 꽃미남 소라고 할 수 있겠는데, 연필로 두덕두덕 짓뭉개며 그린 소의 얼굴 윤곽선의 느낌이 얼마나 감미롭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소와 여인의 표정은 서로를 향한 연민과 애잔함으로 가득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심성을 느끼게 하는, 모가 깎여 부드러워진 우리나라 노년기 산들의 윤곽선 같은, 전형적인 한국적 선조이다. 이 그림은 비록 작은 드로잉 소품이지만, 뭉툭함 속에 감추어진 작가의 감각적 예기(銳氣)가 유감없이 발휘된 보기 드문 명품이다.

화가의 작업은 말년으로 진행할수록 모티브와 주제의식의 심화 속에서 구체적 형상들은 해체되어 차츰 불명료하게 바뀌고, 추상성을 띠는 암시적 터치와 분방한 색조의 뒤엉킴을 통해 회화 본연의 표현적 특질을 점증시켜 나가고 있다. 초기의 작업들이 사실성이나 설화적 요소들을 통해 민족정서나 향토성을 환기시켜 내고 있다면, 후기에 이르러서는 간략하면서도 대담한 선묘의 구사로 대상의 골격만을 추려내는 회화의 탐미적 속성에 깊이 천착하게 된다. 즉, 다이내믹한 선조의 기운과 동세만으로 짙은 풍토성에서 나오는 색채 및 형상요소들을 대체함으로서 정감으로 표출되는 생명력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은 선묘를 중심으로 하는 북방계 예술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소(1991)’나 청색조의 ‘소와 여인’ 등 1980년대 이후의 후기작들은 이러한 포정해우(?丁解牛)적 기운생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화면이 담아내고 있는 동양성의 본질일 것이다.

다음으로, 이 회고전에서 살펴볼 수 있는 두 번째의 흐름은 풍경 작업들이다. 작가는 부산, 경남 일원과 경주 남산, 제주도, 미국 LA 근교 등을 그린 풍경화들을 다수 남겼음에도 ‘소와 여인’ 연작들과 비교될 때마다 제작의 본령이 아니라는 점에서 소홀히 간과되어져 버린 측면이 있다. 미술학교 재학 당시부터 이루어진 도쿠리츠텐(獨立展)과 지유텐(自由展)의 출품에서 볼 수 있듯 - 독립미술가협회는 야수파적 경향의, 자유미술가협회(1940년부터는 미술창작가협회로 명칭이 변경)는 기하추상 계열을 주조로 구상적 사실주의와 야수파 계열까지 포괄하는 아방가르드 경향의 단체였으며, 이들의 공모전인 도쿠리츠텐과 지유텐은 니카텐(二科展)이 그러했듯 일본의 주류 미술제도인 분텐(文展)에 반기를 든 재야 미술인들의 활동공간이었다 - 그의 관심이 당시 일본 화단에서 신경향파로 통칭되는 반(反) 아카데미즘의 표현파나 초현실주의에 경도되었음에도, 역설적으로 그의 풍경화에서는 정통적 테크니샹(technicien)으로서의 면모가 강렬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점은 그의 전형적 작품들의 재야적, 전위적 속성을 풍경화에 나타나는 클래식한 회화가로서의 면모로 보족(補足)하는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 송혜수, 부산항


씨레이션 박스지에 그린 ‘천마산’은 6.25이후인 1950년대 중, 후반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가까이에서 볼 때, 화면의 갈색조 부분은 그저 붓 터치에 불과하지만, 멀리서 보면 웅장한 산의 전경을 드러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근대적 감성이 진하게 풍기는 이 작품은 중년기 화가의 필력과 걸출한 테크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품이다. 1960년대 작품인 ‘충무 앞바다(1967)’는 일견 단조로운 듯해 보이지만 산의 덩어리를 두 가지 색채로 구성하면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나누는 한편, 한 쪽 끝으로 나무를 배치함으로서 구성의 묘를 살리고 있다. ‘송정(1988)’ 역시 이와 비슷한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고적한 바다 풍경은 관조와 휴식을 주는 묘한 미적 감흥을 내포하고 있다. 영주동에서 바라본 부산항과 봉래산을 회연두(灰軟豆)의 단색조로 그려낸 작품 ‘부산항(1991)’에서는 작가 특유의 감각적 색채구사와 세련된 화면처리 기법을 제대로 감상해 볼 수 있다. 오륙도와 이기대 일원의 해경을 그린 작품 ‘오륙도(1991)’의 경우, 바다와 하늘을 처리한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붓 터치가 인상파적 풍취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의 풍경화에서의 브러시 스트로크(brush stroke)를 단순히 인상주의의 맥락으로만 서술할 수 없다. 오히려 여기에는 서구의 인상주의 개념을 넘어, 겸재(謙齋)의 진경산수 개념으로 풀어내어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물론 현장에 즉해 그 순간의 느낌을 풀어낸다는 점에 있어서는 양자가 서로 공통적이다. 그러나 인상주의적 프레임에서는 그리는 주체가 화면 속 대상을 타자로 응시 - 주객 분리 - 하고 있는데 반해, 진경산수의 경우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나 자신이 화면 속에 들어가 있다는 점, 즉 화가 자신과 화면 속 대상이 어우러지는 주객의 합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동서양 사유체계에 있어서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인데, 그의 화면에서는 서양화 재료들을 사용했음에도 감정과 흥취를 따라 마음이 느끼는 대로 자신이 화면 속에 들어가, 화면 속의 대상과 흔연히 동화되는 물아일치의 경지가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풍경화가 가지는 최대(最大), 최미(最美)의 덕목이라 하겠다. 실경이 아닌, 진경(眞景)으로서의 풍경은 주체의 마음으로 육박하는 교감적 진실이므로, 그것은 표상화된 풍경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실재로서의 풍경에서 본질이 아닌 모든 분식(粉飾)들을 지운, 가장 심플(simple)한 양상으로 눈앞에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송정(1988)’의 담백한 정경에 스민 자연에 대한 화가의 무심한 교감이나 격랑에 휘감긴 듯한 ‘오륙도(1991)’ 풍경에 실린 격정적 교감은 그 안에 주체의 의경(意境)이 드리워져 있다는 점에서 마치 청전(靑田)이나 소정(小亭)의 산수화 속에 점점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대자연과 합일된 인간의 마음과도 그 차원을 같이하고 있다.

이 외에도 1967년, 1971년 작(作)인 추상화 2점과 백자 매병 위에 철화로 ‘소(1994)’를 그린 도화(陶畵) 1점, 화가의 작업으로서는 이례적 화목(畵目)인 정물화 ‘국화(1991)’ 등이 함께 출품되고 있어, 화가 작업의 다채로운 장르적 특성들을 일별해 볼 수 있다. 또한 화가의 1960년대 이전 그림으로는 비교적 대작에 속할 뿐 아니라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 중에 가장 간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군마(1959)’의 경우, 고구려 고분벽화의 화면을 연상케 하는 적황색 계열의 색조로 이루어진 바탕 위에 암시적 필선을 구사해, 신비롭고도 경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대상과 화면의 상호 침투 때문에 윤곽선을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이 작품은 화가의 선조 위주로 이루어진, 구상이되 추상적 양상을 풍기는 후기 작업의 한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신미술가협회의 회원이자 작가의 동향 친구였던 문학수(文學洙)가 주로 말을 그리는 중에 더러 소를 취재한 것과는 반대로, 화가는 주로 소를 다루는 가운데 그 변주의 일환으로 말을 그리기도 했다. 연필화 ‘말과 여인(도2)’의 경우도 이러한 작례(作例)의 하나로, 동명(同名)인 유화 작품(1971)의 에스키스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출품되지 못했지만 ‘불상’이나 ‘수렵도’ 역시 작가가 즐겨 다루던 소재로, 이 계열의 작업들은 작가가 북방적, 불교적 내용들에서도 짙은 예술적 영감을 수득(收得)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생 출신 화가들의 작업에서 특별히 주목해 보아야 할 바는 이들 중 상당수가 쉬르리얼리즘(surrealism)이나 포비즘(fauvism)적 사조로 향토적 정취와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화가 뿐 아니라 친구들인 문학수, 이중섭 등의 작업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화가 작품들 중에서는 ‘이조시대(도3)’나 ‘설화(도4)’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조시대(1942)’는 묵직한 암색조의 더께 위에 야수파적 필촉의 구사가 특징적인 표현주의 계열의 작품인데, 황토색과 흰색의 사용으로 향토적 정서를 강조하고 있으며, 갓 쓴 남자들, 물동이를 인 아낙네와 다른 여인들, 몇몇 아이들이 나란히 횡렬해 서 있는 모습 위에 조선적 정감과 애환을 투영시키고 있다. ‘설화(1942)’의 경우, 전경에는 소를 탄 채 장죽을 든 남자와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경은 무언가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비현실의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머리를 길게 땋은 젊은 여인이 청태 낀 비석 앞에서 슬픔에 겨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 속 무사상이나 신상처럼 보이는 상투머리의 남성이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덩실덩실 춤추듯 걸어오고 있다. 이 남자가 마주보고 있는 하늘 공간에는 비천상을 연상케 하는 한 여인의 혼이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떠돌고, 화면 좌측 언덕 위에는 화려한 복색을 한 일군의 남녀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작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김희대(金熙大)의 글 ‘송혜수의 <설화>’를 참조할 것).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이었던 김희대는 “마치 마법에 걸린 듯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각자 다른 행위들을 조용히 진행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라 가위눌린 꿈에서 등장하는 고독과 절망의 화신들로 여겨진다. 그것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그저 강요된 일상을 살아가는 식민지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낯선 이국땅에서 서글픈 망향가를 부르며 고향에 두고 온 이웃의 핏기 없는 얼굴들을 머나먼 전설 속의 존재로 그렸던 것이다”라고 이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데, 화면의 내용에서는 한국적 느낌을 풍기는 듯 보이지만, 형식에 있어서는 몽환적 분위기가 짙은 초현실적 구성이다. 일본의 경우, 당시 초현실주의는 재야 미술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조였기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우리의 미술학도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감한 심경을 표현하는 상징적, 은유적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망국의 설움과 암울한 현실에 대한 시름은 그들로 하여금 현실 너머의 설화나 역사 속 원형적, 이상향적 형상들을 갈구하게 만들었고, 당시의 화가 역시도 ‘있는 것’ 보다는 ‘있었으면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양식으로 민족적 기조에 바탕하는 환상과 초현실의 세계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 송혜수, 붉은소



▲ 송혜수



▲ 송혜수


화가는 생전에 ‘예술은 마음의 눈물이며, 그림은 마음의 낙서’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것은 ‘그림은 다만 마음을 담는 그릇일 뿐, 중요한 것은 혼과 정신’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예술이 상업적 기준으로만 판단되고 있는 시류와, 예술품이 그만큼의 돈의 액수로만 평가되고 있는 세태에, 참된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눈물 같은 것이라는 작가의 견해를 이 시대에 우리들이 한 번쯤은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송혜수(Song Hyesoo, 1913-2005)



평양 출신으로 일본 동경의 제국(帝國) 미술학교를 졸업했고, 6.25 이후 부산에 정착했다. 해방 전에는 백우회

(白牛會), 해방 후에는 50년 미협과 한국신자유미술가회의 동인으로 활동했고, 송혜수 미술연구소를 개설하여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으며, 자유로운 예술정신에 입각한 재야적, 반골적 기풍으로 일평생 전업을 견지하면서

민족적 원형질과 원초적 생명력을 추구한 근대기의 전형적인 작가상을 확립하였다. 또 작가는 별세하기 전, 사

재를 출연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송혜수 미술상을 제정, 지역 미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했다.



1913년 8월 13일 평양 출생 (평안남도 평양시 경창리 55번지)

평양 숭덕소학교, 숭인중학교 다니고, 상수보통학교, 숭인고등보통학교 졸업

일본 도쿄(東京)에서 츠다 세이슈(津田正周)에게 사사

1938년 도쿄 데이코쿠(帝國) 미술학교 서양화과 입학, 이후 사진관 일을 하면서 고학

1938년 재동경미술협회 (이전의 백우회(白牛會)에서 명칭이 변경됨) 회원

1939년 제2회 재동경미술협회전 출품 (화신화랑, 서울)

1940년 제3회 재동경미술협회전 출품 (조선총독부 미술관, 서울)

1941년 제11회 도쿄 도쿠리츠텐(獨立展) 입선 (김만형ㆍ양달석ㆍ조동벽ㆍ홍일표 등 출품)

1942년 제6회 도쿄 미술창작가협회전 (지유텐, 自由展) 입선

1943년 제7회 도쿄 미술창작가협회전 (지유텐, 自由展) 입선 및 본상 수상

1943년 도쿄 데이코쿠 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졸업 후 징용을 피해 만주에 머물다가 해방 후 서울에서 활동

1949년 유화신작전 출품 (대원화랑, 서울)

1950년 50년 미술협회 결성 (김병기ㆍ김영주ㆍ김환기ㆍ남 관ㆍ박고석ㆍ송혜수ㆍ장욱진 등)

50년 미술협회의 창립전은 전쟁으로 취소되었고, 1.4후퇴 때 피난 후 부산에 정착

1951년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

1951년 종군 스케치 3인전 (송혜수ㆍ장욱진ㆍ한 묵) 개최

1951년 내자아파트 (휴전시 외국기자 숙소) 현역작가 초대전 출품

1951년 국립 중앙공보관 개관 기념전 출품 (서울)

1951년 한국 현대대표작가 초대전 출품

1952년 종군화가 작품전 출품 (22인)

1959년 독립작가 3인전 (송혜수ㆍ양달석ㆍ조동벽) 개최 (르네상스 다방, 부산)

1959년 한국미술대상전 초대작가

1963년 김원갑ㆍ전혁림과 전시

1967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1967년 한국현대화가 100인전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1967년 국립현대미술관 상설미술전 초대출품

1969년 부산 수운화랑 개관기념전 출품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 초대작가

1972년 한국신자유미술가회 창립회원 (부산)

1973년 제6회 후기회전 출품 (부산시민회관 화랑)

1974년 홍익대학교 미술박물관 개관기념 현대작가 초대전 출품

1974년 한국예술진흥원 초대전 출품

1975년 중진 5인 (김종식ㆍ송혜수ㆍ양달석ㆍ장욱진ㆍ주 경) 초대전 (부산공간화랑)

1975년 지방작가 초대전 출품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76년 개인전 (명인화랑, 부산)

1977년 신조형파 회원

1977년 송혜수ㆍ전혁림 은지화전 (부산공간화랑)

1977년 한국현대서양화대전 출품

1978년 서양화 소품전 출품 (희화랑, 서울)

1978년 서양화 1950년대 회고전 출품 (문화화랑, 서울)

1980년 서양화 16인 초대전 출품 (국제화랑, 부산)

1980년 전기전(前期展) 출품 (원화랑, 부산)

1981년 부산해경전 (원화랑, 부산)

1981년 신자유미술가전 출품 (원화랑, 부산)

1982년 롯데미술관 개관 3주년 기념 초대전 출품

1983년 83 현대미술 초대전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1988년 개인전 (부산공간화랑)

1989년 개인전 (LA 시몬스 화랑)

1989년 개인전 (LA 현대화랑)

1989년 Cosmopolitan 회원 (U.S.A / LA)

1989년 눌원 문화상 수상

1989년 송혜수 해외풍물초대전 (부산유나백화점 화랑)

1980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LA 거주

1991년 개인전 (갤러리 월드, 부산)

1995년 개인전 (시몽화랑, 서울)

1996년 한국의 누드미술 80년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서울)

1997년 근대를 보는 눈, 한국현대미술 :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1998년 부산미술재조명전 (부산시립미술관)

1999년 근대를 보는 눈, 다시 찾은 근대미술 (국립현대미술관)

1999년 한국미술 99 - 인간ㆍ자연ㆍ사물 (국립현대미술관)

2000년 마음의 낙서전 (최장호 갤러리, 부산)

2001년 동다송 문화상 수상

2001년 개인전 (마린갤러리, 부산)

2002년 원로작가 4인 (송혜수ㆍ전혁림ㆍ정점식ㆍ추연근) 초대전 (송하갤러리, 창원)

2002년 송혜수 은지화전 (최장호 갤러리, 부산)

2003년 개인전 (마린갤러리, 부산)

2004년 개인전 (갤러리 몽마르트르, 부산)

2004년 부산시 문화상 수상

1950년대부터 수십 년간 송혜수 미술연구소 운영

2005년 송혜수 미술상 제정

2005년 3월 29일 타계



2013년 회고전 (미광화랑,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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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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