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은 - 김도연展 』
Kim Doyeon Solo Exhibition :: Painting

▲ 김도연, 만남은 I
303.5 x 193.5cm, Oil on Canvas, 2021
전시작가 ▶ 김도연(Kim Doyeon)
전시일정 ▶ 2021. 09. 10 ~ 2021. 09. 16
관람시간 ▶ Open 11:00 ~ Close 18:00
∽ ∥ ∽
부산 미광화랑(MIKWANG GALLERY)
부산시 수영구 광남로 172번길 2(민락동)
T. 051-758-2247
www.mkart.net
● 만남, 그리고 남은 것들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도시센터장)
프롤로그
4차 산업혁명시대. 그 근간은 디지털이다. 지금 우리는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을 압도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빅 데이터와 가상 이미지로 실재 세상이 디지털 공간에서 복제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메타버스의 세상이 열린다.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보다 진화하고 있는 AI. 스스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재현하거나 심지어 넘어선다. 많은 학자가 예술의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것이 오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김도연, for you
162 x 130cm, Oil on Canvas, 2019

▲ 김도연, for me II
162 x 130cm, Oil on Canvas, 2015

▲ 김도연, 오후 세시반 I
194 x 130cm, Oil on Canvas, 2019

▲ 김도연, 달빛 II
108 x 146cm, Oil on Canvas, 2021

▲ 김도연, 비치다
72.7 x 50cm, Oil on Canvas, 2021
만_남은(만남 혹은 남은)
김도연의 작업은 언어화할 수 없는 생경한 감정을 드러내는 회화이다. 자동차 창 너머로 지나가는 순간적인 풍경이나 형태가 불분명한 어스름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어떤 상황이나 사물 혹은 사람과의 만남 뒤에 남은 ‘감정’을 애써 호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매우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기억’이나 ‘시간’의 개념과 이어지기도 한다. 시간의 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성찰해 왔던 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에 의하면 ‘기억’은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이나 의식 속에 “순수기억”이라는 형태로 각인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작가는 베르그송이 이야기했던 순수기억, 다시 말해 내면 속에 잠재해 있는 불연속적인 기억의 감각을 끄집어낸다.
작가노트 | 인물과 풍경의 이미지를 구상적 회화로 재현하며 그러한 회화에서 중의적 감정을 발생시키도록 유도하는 작품 제작을 이어 오고 있다. 이러한 작품 제작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중의적 감정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에서 어떤 요소가 기억 속의 감각을 일깨우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인 서술에서 반복적으로 “상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키워드는 작가의 작품 전반에 뚜렷하게 감지되는 일관된 뉘앙스다.
가령, 2019년에 제작한 “flowⅠ”이라는 작품을 보면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을 마치 시간을 고정한 듯한, 아니 시간의 실재가 증발해 버린 듯한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과거로 달려가 그 흔적마저 남아 있지 않은 ‘찰나’의 순간. 감각적인 붓 터치로 단숨에 그린 기법은 이러한 느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Stop and Move Ⅰ” 역시 풍경 시리즈로 낮게 깔린 지평선 위로 구름과 산의 존재감이 마치 공기처럼 가볍게 묘사되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혹은 존재의 가벼움을 상상하게 만든다. “flow”, “Stop and Move”라는 제목에서 여행의 순간이나 장소에 대한 기억이 오버랩 됨과 동시에 존재 그 자체의 무상함을 느낄 수도 있다.
반면 “Hide and Seek”이라는 작품을 보면 세안을 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고, 비누 거품 사이로 드러나는 자신의 얼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안하는 모습은 매일 봐왔던 이미지였지만 한 순간 어떤 감정을 일깨우는 오브제가 되었다. 작가는 시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찰나의 순간을 기록함과 동시에 극사실에 가까운 회화를 병행해 오고 있다. 대척점에 가까울 정도로 두 작품의 간극은 크다. 속도감 있는 붓 터치로 순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과 눈동자에 비친 실내의 모습까지 묘사하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오랫동안 병행해 오고 있다.
작가노트 | 아무런 의식 없이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나의 모습은 시각적 상이자 하나의 일루전이다. 형용할 수 없는 이러한 심적 감정들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익숙하면서 단일한 형상을 보고도 낯섦을 느끼는 현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작업에 대한 의지는 명확해진다. 사실 작가에게서 작업의 스타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작가의 작업은 기억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거나 혹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어떤 풍경, 상황, 사물과 우연한 조우, 그리고 그 이후의 감정을 호출해 내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 태도는 그 상황과 연결될 뿐이지 작업의 형식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작가를 강렬하게 찔렀던 그 순간의 이미지, 감각, 감정에 대한 재현. 그것이 작가가 추구하는 회화의 이유다. 그리고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작가의 작업에서는 ‘상실’이나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깊이 내재하여 있다. 풍경과 인물,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이 감정은 2019년에 제작한 “엄마’라는 작품에서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구체적인 형상은 드러나진 않지만 어두운 색조로 처리된 뒤돌아 누운 인물, 흐릿한 이불의 주름과 몽환적인 방 안의 분위기는 쉽게 언어화할 수 없는 중의적인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아마 이 상황을 바라보았던 작가의 다양한 감정의 레이어들이 가장 잘 드러난 수작이다.
최근 작가는 풍경이나 정물 그리고 인물을 함께 등장시키며 작품의 네러티브를 넓혀가고 있다. “만남은”이라는 작품은 어떤 상황이 끝난 후 사물에 남아있는 자신의 기억을 호출하고 있는 작품이다. 반쯤 먹다 남은 생일 케이크와 주변의 오브제들은 작가가 그토록 표현하고 자했던 ‘만남’ 이후에 남아있는 기억의 형태를 ‘직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작품 “만남은”에서는 여행의 한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스산한 풍경과 무표정한 인물에서 덧없는 일상에 대한 멜랑콜리(mélancholie), 즉, ‘상실’ 혹은 ‘그리움’과 같은 감정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행에 대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기대라는 감정이 탈색된 이 풍경에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소외(alienation)’의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풍경(자연)은 유리창과 분리되어 있고 자신외에는 어떠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너무 멀리 와버려 다시는 멈출 수 없는 ‘설국열차’에 올라탄 인간처럼…

▲ 김도연, 만남은 II
72.7 x 72.7cm, Oil on Canvas, 2021

▲ 김도연, flow I
194 x 130cm, Oil on Canvas, 2019

▲ 김도연, flow II
146 x 97cm, Oil on Canvas, 2019

▲ 김도연, 엄마
145 x 107.5cm, Oil on Canvas, 2019
에필로그
미래의 예술이 어떤 형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형태는 그 어떤 기술로도 복제되지 않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김도연의 회화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알리바이는 알고리즘이나 코드로 변환되지 않는, 불연속적이고 불규칙한 혹은 시적 감흥이나 직관과 같은 섬세한 감각들의 재현에 있다. 그래서 미디어나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고 있는 예술계의 흐름을 비춰볼 때 그녀의 예술적 실천이 형식적으로는 과거의 미학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미’라는 형식을 넘어 ‘감각의 재현’이라는 동시대적인 사유를 담아내기 위한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그녀의 작업 세계가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뛰어난 표현력과 폭넓은 감각의 스펙트럼을 겸비한 기대되는 신인이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