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이 인숙展 』
Doi Insook Solo Exhibition :: Painting

▲ 도이 인숙, 가을의 노래
24x33.5cm, Oil on Canvas, 2013
전시작가 ▶ 도이 인숙(Doi Insook)
전시일정 ▶ 2013. 04. 20 ~ 2013. 04. 30
초대일시 ▶ 2013. 04. 20 PM 5:00
관람시간 ▶ Open 10:00 ~ Close 18:30
∽ ∥ ∽
갤러리 고도(GALLERY GODO)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12
T. 02-720-2223
www.gallerygodo.com
● 유년의 기억, 추억의 장소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도이 인숙의 그림에는 한국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그 풍경은 지난 시간대의 추억어린 장면이기도 하다. 지금은 거의 부재한 풍경이고 사진이나 그 시절을 겪어낸 이들의 기억 속에서만 가능한, 아련한 풍경이다. 그러니 그녀의 그림은 회상이나 추억, 향수에 젖은 그림인 셈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자리한 시골 농가의 어느 한 순간을 추려내 그려낸 그림에는 초가집과 황토벽, 야트막한 산들과 나무, 외양간의 황소,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 고무줄 놀이하는 소녀들, 한복 입은 아낙네들이 일하고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 동네의 어느 한 순간이 문득 멈춰져 있다. 지극히 소박하고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작은 소녀들이 동생을 업고 있거나 고무줄놀이를 하는가 하면 어머니가 일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 속 이 작은 소녀는 작가의 분신이거나 자신의 친구들일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애잔한 기억을 그려냈다.

▲ 도이 인숙, 감나무
32x41cm, Oil on Canvas, 2012

▲ 도이 인숙, 고향
24x33.5cm, Oil on Canvas, 2013

▲ 도이 인숙, 고향
28x53cm, Oil on Canvas, 2013

▲ 도이 인숙, 고향의 가을
48x74cm, Oil on Canvas, 2012
이른바 향토색 짙은 그림들에서 흔하게 접하는 소재이다. 일제식민지 시기에 유행했던 향토주의는 이후 한국 미술에서 여전히 중심적인 화풍으로 각광받아오고 있다. 지금도 이 같은 그림, 이미지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고향과 농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인의 공간의식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급격한 근대화, 산업화를 겼으면서 대부분이 사람들은 시골의 고향을 뒤로 하고 도시로 이주하였고 그에 따라 실향의식과 향수란 감정이 광범위하게 보편화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향토색을 자극하는 그림들은 대중적인 지지와 관심을 받았으며 역으로 그러한 그림들이 한국적인 그림의 한 전형성을 이루기도 했다.
작가에 의하면 이 그림의 소재는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그려졌다고 한다. 짚으로 이은 초가집과 흙 내음 진하게 풍기는 황토벽의 색감과 질감,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침 흘리던, 어둑하고 눅눅한 외양간의 황소, 가난한 어머니들의 노동이 손에 잡힐 듯하다. 그리고 줄넘기 놀이하며 부르던 계집아이들의 노랫소리, 마당을 거닐던 개와 닭, 커다란 나무위에 앉아있던 새들의 지저귐 등이 그림 속에서 환청처럼 들릴 것도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촉각과 청각을 은연중 자극하고 있다. 이 그림은 그렇게 희미하면서도 또렷한 기억에 의존해 그린 그림이다. 시각보다 청각과 촉각, 후각이야말로 오래 남는 기억의 매개들이다. 작가는 자신의 오감을 동원해 지난 시절의 그 장면을 애써 떠올려본다. 분명 눈으로 보고 각인된 풍경이지만 그것은 냄새와 질감, 소리 등으로 전해져 온다.
작가는 유년시절의 농촌풍경을 ‘그림’으로 저장하고 있다. 그 그림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자취를 지우고 대신 정겹고 따스했던 순간만을 기념비적인 장면으로 응고시켰다. 어쩌면 기억은 상흔 대신에 좋았던 것만을 남겨놓는지 모르겠다. 작가가 그린 이 추억의 장면은 한국전쟁과 수복 이후 서울에 정착하기 이전의 평양과 금성에서의 시골생활에 기반을 둔 이미지이다. 알다시피 박인숙은 박수근의 장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그림을 잘 알고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함께 했었던 증인이다. 그녀 역시 미술을 전공했다. 오랜 교직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 그녀는 아버지의 그림과 유사한, 향토 내음 짙게 풍기는 그림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작가는 아득한 유년의 시절을 회상하고 아버지의 그림을 추억한다. 이 두 개의 추억이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다. 자신의 기억과 아버지 그림에 대한 애도와 존경,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의 기억이 마구 겹쳐있다. 자연스레 그림의 소재와 기법에서의 유사성도 크다. 다른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유년의 추억이 주가 되고 원색의 색채가 부분적으로 구사되고 있으며 질감에 있어서는 형체를 온전히 드러내는 선에서 비교적 조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 등이다.

▲ 도이 인숙, 그리움
30x30cm, Oil on Canvas, 2012

▲ 도이 인숙, 그리움
32x41cm, Oil on Canvas, 2011

▲ 도이 인숙, 소녀
24x33.5cm, Oil on Canvas, 2012

▲ 도이 인숙, 아버지가 닭을 쫒아다니며
117x91cm, Oil on Canvas, 2013
캔버스에 물감을 비교적 두툼하게 올려 촉각적인 질감을 구사한 후 선명하고 반듯한 선으로 윤곽을 둘러치고 그 안에 단색으로 칠해 이룬 그림은 무척 평면적이다. 전체적으로 유사한 톤으로 조율된 화면에 부분적으로 원색의 물감들이 개입되어 설정된다. 형상들은 단순하게 도상화 되어 있고 화면은 밝고 깨끗하다. 사각형의 캔버스 사방 모서리를 조금씩 밀고나간 물감의 덩어리들이 비균제적인 외곽을 만들고 그 불규칙한 선과 두께, 질감이 그려진 그림을 바탕에서 떠올려주는, 분리시키는 듯한 묘한 효과를 준다. 캔버스 표면에서 일어난 연출이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벽화의 느낌을 주는 것도 같다. 나로서는 그런 처리가 흥미로웠다. 납작한 평면의 지지대에 풍경과 상황이 올라가있다. 어느 한순간이 느닷없이, 고요하게 얼어버린 것이다. 농촌에서 보내는 일상에 대한 추억을 서사적으로 전하고 있는 이 그림은 무척 동화적이다. 작가는 자신의 유년시절의 그 정겹고 추억어린 순간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이미 아버지인 박수근에 의해 탁월하게 성취된 부분이기도 하다. 도이인숙 역시 아버지와 동일한 선에서 그러한 정서가 담긴 그림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같은 이미지는 이미 자신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은 그러한 소재에 대해 깊은 애착과 향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러한 추억의 이미지, 한국인들의 농촌에 뿌리박은 정서와 감정의 독자적인 형상화이다. 그것은 특정 소재와 질감의 처리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박수근의 딸로서 아버지와 유사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동일한 정서와 감정의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어떻게 아버지가 이룬 독자적인 형상화와 감동적인 회화의 영토를 그녀가 자신만의 시각과 방법론으로 가꾸고 매만지느냐는 흥미로운 부분이자 남겨진 과제다. ⓒ